2008년 06월 08일
야구와 나
오랜만에 하는 장문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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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서 가장 먼저 접한 구기운동이 야구였다. 내가 유소년기에 살았던 서울 강동구의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또래 아이들끼리 방과 후에 야구배트와 글러브, 테니스공을 들고 동네야구를 하는 풍경이 흔했다. 특히 그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복도가 밀폐식 4각형(한 층에 4호가 있는 형)이라, 복도 벽에 스트라이크 존을 그려놓고 가벼운 플라스틱 공을 하루종일 던지며 놀기도 했고 야외 주차장이 넓어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들이 단지 내에서 동네 야구나 미니축구 같은 공놀이를 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우리가 그 때 즐겨하던 야구는 '들고까기'였다. 들고까기란 투수/포수 없이 타자가 공을 제자리에서 살짝 던져 치는 것을 우리가 부르던 말로, 누구도 포수를 보기 싫어하고 공이 너무 멀리 갔다간 다른 집 유리창을 깨버릴 위험이 크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던 최선의 방법이었다. 제대로 투수/포수와 각 포지션을 갖추고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했던 기회는 딱 2번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와 6학년 때 담임교사 입회 하에 이루어졌던 반 공식 행사 때였다. 3학년 때는 까불대고 멋대로 나서기 좋아했던 때라 자청해서 투수를 봤고, 6학년 때는 공놀이도 하지 않고 내성적이었던지라 조용히 하위타순의 타자를 맡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나를 야구 팬으로 만들어 준, 나의 첫 우상을 꼽으라면 해태 타이거스의 김성한 선수를 들 수 있다. 엉덩이를 뒤로 뺀 특이한 타격 자세 탓에 '오리궁뎅이'란 별명을 가진 선수, 그 선수에 대한 특집 기사를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소년 잡지에서 읽고 바로 팬이 되어버렸다. 선수를 좋아하면 구단도 좋아하는 법, 난 자연스레 해태 팬으로서 야구 경기를 지켜봤다. 김성한-한대화-이순철로 이루어지던 해태의 클린업 트리오는 최강이었고, 선발 0점대 방어율의 선동렬, 20홈런에 4할 타율에도 도전했던 이종범 등, 당대의 전설이 차례로 나의 야구 우상으로 함께 했다(그래서인지 올해 이종범 선수의 부활이 무척이나 반갑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태 타이거스에 시련이 찾아오며 나의 프로야구 사랑도 식어버렸다.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라는 당시 해태 김응룡 감독의 성대모사가 개그 프로에 심심찮게 등장하던 때, 난다 긴다하는 스타들은 모두 일본으로 진출해버리는 분위기에서 안그래도 여느 또래 남자아이들과 같이 마이클 조던에 열광하고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꼬박 챙겨보던 평범한-_- 스포츠 팬 H군은 자연스레 국내 프로야구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 와중에 전 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른 야구 스타가 있었으니, 바로 박찬호다. 세계 최강(그래봤자 프로야구가 있는 나라는 몇 개 안되지만) 미국 MLB(메이저리그)에서 강타자들을 뻥뻥 강속구로 윽박지르던 박찬호, 나의 야구 관심은 자연스레 MLB로 옮겨갔다. 그 때쯤 MLB 팬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 이른바 '박찬호 때부터 메이저리그 보기 시작한 것들' 인데, 박찬호 이후에 급격스레 증가한 얕은 지식의 MLB 팬들을 지칭하는 조롱하는 말이었다. 참고로 난 박찬호 이후에 메이저리그 봤고, 박지성 이후에 프리미어리그 봤다. 인정한다-_- 어쨌든 박찬호 이후 잘나가는 선수/유망주들은 너도나도 MLB로 진출하려 했고 국내 프로야구는 더욱 썰렁해만 갔다.
그리고 21세기를 맞이함과 함께 국내 프로야구도 암흑기를 맞이한다. 박찬호는 거액에 다년계약을 맺었고 김병현은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꼈다(비록 월드시리즈에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을지라도). 2002년에는 당연히! 전국민의 관심사가 월드컵에 쏠려버렸고 월드컵이 끝나도 그 관심이 국내 프로야구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구단은 기아 타이거즈가 아닌 보스턴 레드삭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되어버렸다(두 팀의 공통점은 내가 좋아하는 투수가 속한 구단이란 점이었다). 국내 프로야구 소식을 들어도 처음 듣는 선수 이름에 언제나 부진한 기아 타이거즈의 성적표 뿐, 거기서 내 관심은 끝이었다.
2006년, 오랜만에 프로야구를 보러 잠실 야구장을 찾았다. 계기는 대학원 연구실 단체관람이었고, 행사를 기획(?)한 선배가 부산 출신이었던 관계로 우리의 자리는 롯데 응원석이었다. 비록 관중석은 반도 채 차지 않아 썰렁했지만 롯데 팬들의 응원문화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쌔리라!'는 공격적 응원구호, 파울볼이 날아왔을 때 어른이 갖지 말고 '아 주라'고 외치는 어린이 배려 문화, 곳곳에서 들려오는 원색적인 부산 사투리는 꽤나 신선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것은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데려온 신혼부부였는데, 부부가 모두 롯데 유니폼을 입고 아이 앞에서 비닐봉을 두드리며 '롯데~ 롯데~' 응원 조기교육을 시키는 모습이었다. 인상이 깊다 못해 뭔가 섬뜩한 느낌마저 드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찾은 야구장 분위기를 계기로 국내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몰라도 올해 들어 내가 좋아하는 MLB 선수들이 줄줄이 슬럼프를 맞이해버렸다. 게다가 올해에는 많은 해외파 선수들이 국내로 복귀했고, 올드 스타들이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드디어 '꼴데'에서 벗어나 2~3위에서 분전하고 있고, 기아는 초반의 막장짓 탓에 하위권이지만 나름 내가 볼 때는 잘해주고 있는 듯하다.
어디선가 올해 국내 프로야구 관중 누적이 이 추세로 역대 최다를 경신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중계방송에는 가득찬 관중석과 구장을 가득 메우는 함성이 비추어지고, 야구장에 간다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종종 보이는 주변 분위기를 보아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부흥'이 이루어지려는 것 같다. 스포츠 팬으로서, 야구 팬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
올해에는 여유가 있을 때 야구장을 자주 찾아보고 싶다. 나에게 있어 다른 구기종목보다 야구는 더 특별하다. 야구에는 내 어릴 적 추억이 묻어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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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야구장 같이 가자는 제안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그 중에도 기아/롯데 경기면 좋겠네요.
문학 구장도 가보고픈데 왠지 모르게 SK는 정이 안 가..
# by | 2008/06/08 22:16 | About M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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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옛날 해태를 보던 다른 구단 팬들도 이런 심정이었을 듯도.
역시 야구는 투수놀음일까요